유기 푼주
조선시대
지름38 높이12.3cm
판매가 25만.택포
푼주는 큰 대접 모양의 사기그릇으로, 입지름이 넓고 밑이 좁아서 음식을 버무리거나 다 된 음식을 담는데 사용한다. ‘분자’, ‘푼자’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집필된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에 용기 중 “사기 제품으로 동이(분盆)에 해당하는 ‘푼주’, ‘식소라’, ‘전대야’ 등이 있다. 모두 음식물을 담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푼주, 푼자에 해당하는 그릇으로 입지름이 넓은 사기그릇이 그려져 있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분盆’은 ‘딜동ㅣ분’이며,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부엌이나 찬방에 두고 쓰는 살림살이[廚中雜物]에 푼주[盆子]가 있다. 조선후기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분盆을 설명하기를 “물 긷는 동이와 이름은 같고 제도는 다른 그릇이다. 이 그릇은 몸통이 납작하고 운두가 누워있으며, 밑은 좁으나 아가리는 넓고 귀는 없으나 전이 있다. 지금의 세숫대야와 같지만 크기가 이보다 배가 되기도 한다. 일체의 양조에 모두 이 그릇에 재료를 담아 나르니, 인가에서는 많이 갖춰둬야 할 그릇이다. 장독이 비와 이슬에 맞지 않게 할 때도 이 그릇으로 덮는다.”고
했다.
한편 동분銅盆에 대한 설명으로 “놋쇠로 만들고, 모양은 물을 긷는 질그릇 물동이와 같다. 밥이나 죽, 국, 떡 등의 먹을거리를 담는데 담지 못하는 음식이 없다.”고 하여 조리용이나 운반용으로 두루 사용한 그릇임을 알 수 있다.
푼주는 주로 옹기로 만들지만 백자, 유기로도 제작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청화백자로 만든 경우도 있다. 기형도 다양해져서 아가리가 밑바닥보다 넓게 벌어진 것, 밑바닥보다 넓지만 아가리가 살짝 안으로 오므라진 것, 약간 넙적한 전이 달려 있고 종발과 같은 형태에 약간 높은 굽이 달린 푼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