去國一身輕似葉(거국일신경사엽)、
高名千古重於山(고명천고중어산).
고국을 떠나는 이 한 몸은 나뭇잎보다도 가볍지만,
고명(高名)은 천고(千古)에 산보다도 높도다.
歲在丁卯春(세재정묘춘) 때는 정묘년 봄
天(노천) 월하 스님의 법호
月下(월하) 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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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고승. 1915년 음력 2월 25일 충남 부여군 군수리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노천은 법호(法號)이고 법명이 월하(月下)이다.
1958년 조계종 총무부장 권한대행, 1958년 조계종 감찰원장, 1960년 중앙종회 의장직을 수행했다.
1970년부터는 통도사 조실로 통도사 보광전 염화실에 주석하며 통도사를 위해 일생을 바치게 된다.
1975년 동국학원 재단이사장, 1979년 조계종 총무원장, 1980년 종정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으며 1984년에는 영축총림 방장으로 추대됐다.
1994년 종단 개혁때는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조계종 제9대 종정으로 취임했다. 1998년 종단사태 이후 2001년에 다시 영축총림 방장을 재추대 되어 영축총림 수장으로, 종단의 어른으로 자리하였다.
스님의 선시는 1998년 문도들에 의해 《월하대종사 상당법어집》으로 묶여진 바 있다.
1992년엔 정신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 건립기금으로 아무도 모르게 1억5000만원을 희사하기도 했다.
월하스님이 2003년 12월 4일 오전 9시 15분께 세수 89세, 법랍 71세로 통도사 정변전에서 열반하셨다.